샤먼의 나무가 있는 삼거리에 내려오니 날이 개인다. 시간도 넉넉하니(산에서도 해가 11시 넘어야 떨어진다) 스베따가 폭포의 노래를 들으러 가자고 한다. Come on~! 산허리에는 여전히 구름이 걸려있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이제 쨍~ 허다. 작은 못이 다소곳이 반겨준다. 능선 길보다 야생화가 더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계곡 그 자체도 아름답지만, 부러진 나무가 놓여있어야 더 근사해 보인다. 저만 그런가요? ^^ㅋ 한쪽에 짐을 부리고 폭포의 노래를 들으러 나선다. 그닥 높지 않은 폭포임에 불구하고 목청은 우렁차고 당당하다. 힘찬 아우성은 하얀 포말이 되어 온 산으로 울려 퍼진다. 스베따도 흥이 난 듯 폭포 주변을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나무 밑둥치에 옹기종기 피어난 이끼들은 무슨 노래를 하나 ..
밤새 내리던 비는, 날이 밝아도 그치지 않는다. 짐을 꾸리고 야영지 한 켠에 있는 주방에 찾아들어 장작불 지피는 것을 바라본다. 내가 사랑하는 세 가지 빛깔 산의 싱그러운 초록과 바다의 짙푸른 파랑, 그리고 장작불의 투명한 빨강 우연찮게도 일행들이 빨강, 초록, 파랑 우의를 걸치고 있다. @.@ 스베따가 앞에 나서고 그 뒤를 따라간다. 왕이 세상을 좌지우지 하던 시절부터, 귀족들이 마차를 타고 나들이를 왔던 트레킹 코스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길은 가파른 경사면을 피해 이 굽이 저 굽이 유하게 휘둘러 간다. 말 그대로, 지천에 야생화가 만발해 있다. 귀하신 마나님들께서 애써 깊은 산골까지 찾아왔을 법 하다. 산행대장님 단독 샷! 산 중턱 삼거리에 있는 샤먼의 나무 여기서 체르스키 픽 정상과 폭포로 가는 길..
빗방울은 산행에 있어 다소의 번거로움을 주지만, 나뭇잎 내면의 소리를 선명하게 들려준다. 들리는가, 싱그러운 나뭇잎이 속삭이는 초록의 향연이! 완만하고 너그러운 흙길을 따라, 작은 계곡을 여럿 건넌다.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호롤룰루~ 며칠간 연이어 내린 비로 급격하게 불어버린 계곡은 제 몸을 비우느라 안간힘을 쓰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흘러간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한없이 왜소하고 초라한 동시에 당당하다. 늦게 출발한 말이 금새 쫓아 올라온다. 누이와 동생, 말이 모두 지쳐보인다. '조금만 더 힘내요, 아잣!' 길을 내어주고, 이제 우리가 말의 뒷꽁무니를 따라간다. 울창했던 나무들의 눈높이가 시나브로 낮아지며, 시선도 낮은 곳을 향하는데 그 자리에 곱고 어여쁜 야생화가 만발하였구..
슬루지얀카의 말 목장에서 체르스키 픽(2,090m)까지는 20여 킬로미터, 가이드에 의하면 12시간 넘게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산림초소인 까르단을 지나 체르스키 픽 밑에 있는 야영지까지 가서 하룻밤 머물 계획으로 길을 떠난다. 하마르 다반 산맥에 있는 체르스키 픽은 주로 러시아 사람들이 주말에 캠핑을 하러 찾는 봉우리로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산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고 실제로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몇 년 전에 한국인 처자가 홀로 찾아 왔었다고 하는데 정상을 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고로, 우리 일행이 체르스키 픽을 오르는 최초의 한국人인 셈이다. 출발하기 전에 튼실한 말을 한 마리 구해서 카고백(= 짐)을 실는다. 말 한 마리를 하루 이용하는데 3,500 Rub, 우리나라 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