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롬보의 찬란한 아침을 뒤로 하고 길을 나선다. 코발트 블루의 하늘 아래 황량한 킬리만자로의 산자락이 펼쳐져 있다. 트레킹 3일차, 킬리만자로 국립공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키보 산장(Kibo Hut, 4700m)까지 올라간다. 고도차이가 980미터이지만 키보 산장까지 큰 오르막없이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4천의 고지대여서 숨을 고르기가 힘들다. 킬리만자로에서 제일 큰 분화구인 키보(Kibo Circuit)를 온종일 바라보며 걷는다. 그래서 혹자는 이 길이 매우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한다. 가볍운 차림으로 걷는 우리도 힘든데,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은 오직할까. 항상 그렇지만,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오를 수 있음에 감사한다. 킬리만자로의 또다른 루트인 마차메 루트로 가는 갈림길에서 쉬어간다. 건장..
밤새 내리던 비는, 날이 밝아도 그치지 않는다. 짐을 꾸리고 야영지 한 켠에 있는 주방에 찾아들어 장작불 지피는 것을 바라본다. 내가 사랑하는 세 가지 빛깔 산의 싱그러운 초록과 바다의 짙푸른 파랑, 그리고 장작불의 투명한 빨강 우연찮게도 일행들이 빨강, 초록, 파랑 우의를 걸치고 있다. @.@ 스베따가 앞에 나서고 그 뒤를 따라간다. 왕이 세상을 좌지우지 하던 시절부터, 귀족들이 마차를 타고 나들이를 왔던 트레킹 코스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길은 가파른 경사면을 피해 이 굽이 저 굽이 유하게 휘둘러 간다. 말 그대로, 지천에 야생화가 만발해 있다. 귀하신 마나님들께서 애써 깊은 산골까지 찾아왔을 법 하다. 산행대장님 단독 샷! 산 중턱 삼거리에 있는 샤먼의 나무 여기서 체르스키 픽 정상과 폭포로 가는 길..
빗방울은 산행에 있어 다소의 번거로움을 주지만, 나뭇잎 내면의 소리를 선명하게 들려준다. 들리는가, 싱그러운 나뭇잎이 속삭이는 초록의 향연이! 완만하고 너그러운 흙길을 따라, 작은 계곡을 여럿 건넌다.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호롤룰루~ 며칠간 연이어 내린 비로 급격하게 불어버린 계곡은 제 몸을 비우느라 안간힘을 쓰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흘러간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한없이 왜소하고 초라한 동시에 당당하다. 늦게 출발한 말이 금새 쫓아 올라온다. 누이와 동생, 말이 모두 지쳐보인다. '조금만 더 힘내요, 아잣!' 길을 내어주고, 이제 우리가 말의 뒷꽁무니를 따라간다. 울창했던 나무들의 눈높이가 시나브로 낮아지며, 시선도 낮은 곳을 향하는데 그 자리에 곱고 어여쁜 야생화가 만발하였구..
슬루지얀카의 말 목장에서 체르스키 픽(2,090m)까지는 20여 킬로미터, 가이드에 의하면 12시간 넘게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산림초소인 까르단을 지나 체르스키 픽 밑에 있는 야영지까지 가서 하룻밤 머물 계획으로 길을 떠난다. 하마르 다반 산맥에 있는 체르스키 픽은 주로 러시아 사람들이 주말에 캠핑을 하러 찾는 봉우리로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산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고 실제로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몇 년 전에 한국인 처자가 홀로 찾아 왔었다고 하는데 정상을 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고로, 우리 일행이 체르스키 픽을 오르는 최초의 한국人인 셈이다. 출발하기 전에 튼실한 말을 한 마리 구해서 카고백(= 짐)을 실는다. 말 한 마리를 하루 이용하는데 3,500 Rub, 우리나라 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