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은 산행에 있어 다소의 번거로움을 주지만, 나뭇잎 내면의 소리를 선명하게 들려준다. 들리는가, 싱그러운 나뭇잎이 속삭이는 초록의 향연이! 완만하고 너그러운 흙길을 따라, 작은 계곡을 여럿 건넌다.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호롤룰루~ 며칠간 연이어 내린 비로 급격하게 불어버린 계곡은 제 몸을 비우느라 안간힘을 쓰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흘러간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한없이 왜소하고 초라한 동시에 당당하다. 늦게 출발한 말이 금새 쫓아 올라온다. 누이와 동생, 말이 모두 지쳐보인다. '조금만 더 힘내요, 아잣!' 길을 내어주고, 이제 우리가 말의 뒷꽁무니를 따라간다. 울창했던 나무들의 눈높이가 시나브로 낮아지며, 시선도 낮은 곳을 향하는데 그 자리에 곱고 어여쁜 야생화가 만발하였구..
슬루지얀카의 말 목장에서 체르스키 픽(2,090m)까지는 20여 킬로미터, 가이드에 의하면 12시간 넘게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산림초소인 까르단을 지나 체르스키 픽 밑에 있는 야영지까지 가서 하룻밤 머물 계획으로 길을 떠난다. 하마르 다반 산맥에 있는 체르스키 픽은 주로 러시아 사람들이 주말에 캠핑을 하러 찾는 봉우리로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산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고 실제로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몇 년 전에 한국인 처자가 홀로 찾아 왔었다고 하는데 정상을 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고로, 우리 일행이 체르스키 픽을 오르는 최초의 한국人인 셈이다. 출발하기 전에 튼실한 말을 한 마리 구해서 카고백(= 짐)을 실는다. 말 한 마리를 하루 이용하는데 3,500 Rub, 우리나라 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