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부르는 노래1 [델리-자이푸르]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기탄잘리' 한 권과 빈 노트, 최소의 옷가지를 챙겨서 막연하게 꿈꿔왔던 인도를 찾아간다. 타인만이 가득한 그 곳에서 치열하게 자신과 마주보기 위해 홀로 떠난다.


델리에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 후텁지근한 공기가 온 몸을 감싼다. 공기뿐만 아니라 바람, 대지, 모든 것이 끈끈하고 무덥다. 전혀 생각치 못했던 불쾌한 공기가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두려움으로 모두 치환시켜버린다. 잠시 멍하게 서있다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한국사람과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 델리 시내로 들어간다.

델리의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 소와 동물, 차와 릭샤로 활기차고 분주하다. 그들은 작열하는 태양이 무안하도록 아무렇지 않게 오랫동안 이어온(그리고 변함없이 지켜갈 듯한) 일상을 채우고 있다. 고래고래 소리치는 몇몇 장사치들의 호기는 태양보다 뜨겁다. 터덜터덜, 그네들의 일상을 두리번거리다 길거리의 아이들을 만난다.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은 호기심 많은 어린왕자와 같다.
다른 생김새, 다른 말에 신경쓰지 않고 성큼 다가와 말을 걸 줄 안다.
쓸데없는 지식과 위선으로 뒤집어 쓴 가면을 벗길 줄 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웃을 수 밖에 없다.
 
2002. 6.27. In Del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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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짜이, 짜이~'를 외치는 짜이팔이와 사람들로 복작대는 야간열차를 타고 'Pink City'라고 불리우는 자이푸르에 도착한다. 도시의 건물을 온통 핑크색으로 물들여 놓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아름답다. 델리보다 작지만 도로는 더 무질서하고 소란스럽다.

암보르 포트를 가기 위해 버스의 뒷자석에 앉는다. 덜컹거리는 창가에 기대어 있는데 옆에 앉은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어디서 왔느냐, 이름이 뭐냐? 어쩌구저쩌구...' 이네들은 이렇게 아무 꺼리낌없이 사람에게 다가오곤 한다. 짧은 영어로 빈곤한 대화를 나누다가 '삐리'라는 잎담배를 얻어 태운다. 처음엔 좀 독하다 싶었는데 쌉쌀하고 칼칼한게 입맛에 맞는다.

암보르 포트는 외곽에 위치해서 시내에 비해서 한결 한적하고 여유롭다. 뜨거운 태양아래 찬찬히 성곽에 오른다. 고래(古來)의 영광과 권위는 세월의 먼지와 풍파에 시달린 흔적에 묻혀 사라지고 쓸쓸한 성곽만이 남아있다.
자이푸르로 돌아와서 숙소로 가는 길에 꿈을 꾸고 있는 릭샤왈라를 만난다.


릭샤왈라의 꿈

수많은 릭샤왈라가 소란스런 거리의 차 사이를 비집고, 사람들을 스치며 달린다.
후텁지근한 공기, 작열하는 태양속을 거침없이 내달린다.
그들은 인도의 활기 넘치는 발이다.

그들도 꿈을 꾼다.
그들의 생계수단이자 보금자리인 릭샤에 누워 꿈을 꾼다.
더 나은 생활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눈감고 있는 그 순간의 안락함을 꿈꾸고 있을 뿐이다.
 
2002. 6.29. In Jaip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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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푸르에서 유명한 '라씨왈라'에 가서 바나나 라씨(Lassi) 두 잔으로 배를 채운다. 달콤하고 찐한 거이, 소문보다 훨 맛나다! 라씨를 토기에 담아서 주는데 먹고나서 깨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도의 음식이 향료가 강해서 입맛에 안맞아 못먹는 사람이 많은데, 입 하나는 걸친 나는 생전 맛보지 못했던 모든 인도음식, 특히나 짜이(Chai)와 라씨는 미치고 환장하도록 좋아한다.

론리플래닛을 뒤적거리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무겁게 짓누르는 길을 걸어 갈타에 있는 황금의 사원을 찾아간다. 황금빛의 사원보다 그 앞에 서 있는 나무에 마음이 더 끌린다. 황량하고 척박한 땅에 뿌리를 박고 앙상한 가지를 달고 있는 나무...

'꿈꾸는 나무야, 지금은 비록 앙상하지만 언젠가는 풍성한 가지를 달고 환하게 웃을 수 있을 거야'

조드푸르에 가기 위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헬로우, 프렌드!' 낯선 이가 인사를 건넨다. Laz, 친구와 노래를 좋아한다며 자기 집으로 가자 한다. 싫지는 않아 따라가며 '이 녀석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근데 이 녀석, 서슴없이 털석 주저앉아 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른다. 공연한 의심과 오해가 흥겨운 노랫가락에 실려 날아간다.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를 즐기자!' 아리랑 한 가락 부르고 자리를 일어서려 하는데, 조그만 목각인형을 건네준다. 선물이라고.

개나리 된장, 잠시나마 의심과 오해를 했던 내 자신이 마냥 창피하고 쑥스럽다.


목각인형

목각인형처럼 한번 새기면 되돌릴 수 없는 무엇
새겼다가 지우고 다시 새길 수 있는 무엇들
무엇과 무엇들의 存, 삶.

2002. 7. 1. In Jaip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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