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est #01 조르바, 에베레스트 쿰부 트렉에 첫걸음을 내딛다

종라의 롯지에서 바라본 촐라체(Cholatse, 6440m), 박범신의 소설로 유명한 봉우리가 되었다.


오늘날, 사진이 작가의 감성과 상상력을 표현하는 주요 예술작품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개인에게 있어서는 기억의 환생, 기록의 수단으로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는 것을 지난 사진을 들춰보며 새삼 느낀다.

골똘히 바라보다, 때로는 무심코 담았던 사진과 영혼에 깊이 새겨진 찬란한 기억의 조각들을 추스려
네팔 에베레스트 쿰부 라운드 트렉(또는 Three Pass Trek)을 다시 찾아간다.

루크라(Lukla, 2800m) → 채플렁(Chablung, 2700m) → 타로 코시(Tharo Kosi, 2510m) : 2시간
카트만두에서 루크라까지는 프로펠러 경비행기를 이용해 다가간다. 지리(Jiri)에서부터 걸어서 올라 갈 수도 있는데, 루크라까지 5박 6일이 걸린다. 이 길은 초기 에베레스트 등반팀의 카라반 루트로, 시간이 넉넉하다면 걸어올라갈 만한 가치가 있다. 루크라에 내리면 높은 고도(2,800m)때문에 고소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부터 나무늘보 원숭이의 느림의 미학을 뇌리에 각인하고 무조건 반사신경에 위임하는 것이 좋다. 루크라 마을을 지나 타로 코시까지는 내리막길이 2시간 여 이어진다.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딛고 그 위용에 긴장했던 사람들은 이 길에 커다란 위안을 받는다. '생각보다 길이 좋구만, 나도 할 수 있다!'


이른 아침, 짐을 꾸려 카트만두 트리뷰반 국내선 공항으로 간다.
아침 해를 받아 반짝이는 비행기의 날개가 태양을 향해 날아가려던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느껴진다.

곧 저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생각에, 한껏 흥이난다.


$ 114

한국에서는 전화번호를 불어볼 때 누르는 번호가, 카트만두에서 루크라로 가는 비행기 요금이다.
에베레스트 쿰부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주는 숫자라는 점에서, 궁금중에 대한 해답으로써 일맥상통한다고 하면 어거지일까.


18인승 프로펠러 경비행기, 이 조그만 비행기가 잘 날라갈까?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적잖이 많은데,
조종사가 두눈으로 보면서 비행을 하기 때문에 날씨가 궂거나 시야가 흐리면 뜨지 않는다. 애초에 위험한 짓은 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이 비행기가 사고난 것은 한국에서 교통사고가 나는 확률의 만분의 일도 안된다. 고로 안전하다고 믿어도 된다.

덕분에 비행기가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뜨는 경우가 잦고, 종종 안 떠버리는 것이 흠이지만!


두두두 두두... 드디어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거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들의 매연과 먼지가 카트만두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에 갖혀, 온 도시가 흙빛이다.


비행기는 가우리 샹카(7,010m), 갸오룽(6,980m) 등의 히말라야 연봉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날아간다.
더불어 어께춤을 추듯 우아래로 몸을 떤다.


40분 간의 짜릿한 비행을 마치고, 에베레스트 쿰부 트레킹의 기점인 루크라에 도착한다.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공항 철창 너머에 일거리를 찾아 온 포터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작은 산골마을에 불과했던 곳이 비행장이 들어서면서 에베레스트를 찾는 트레커들의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네팔에서 안나푸르나 다음으로 트레커가 많이 찾는 이 곳에, 크고 화려한 롯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다.


비행장의 윗길에 사람들이 하릴없이 오가고 있다.
비행기가 들어오는 아침에 일거리를 잡지 못하면, 하루 종일 공치게 된다. 


또 다른 비행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져 들어온다.
윗길에 서서 오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것은, 루크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화수분처럼 비행기에서 짐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새벽부터 일거리를 찾아 공항에 나온 모든 이들의 어깨와 두 손이 묵직해지길 바란다.


루크라 사람들의 주된 일거리는 트레커들을 위한 도우미다.
수많은 롯지와 식당, 장비점, 가게, 항공사, 은행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루크라의 마을어귀에 있는 쵸르텐(탑)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탑에 황금빛 치장을 해서 히말라야의 파란 하늘과 더없이 잘 어우러진다.

에베레스트 쿰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티베트 라마불교를 믿으며, 아침, 저녁으로 '옴마니밧메홈'을 읇으며 탑돌이를 한다.


일거리를 찾은 사람들이 바구니에 짐을 이고, 길을 나선다.
처음 무거운 짐진 자들을 봤을 때는 연민과 동정의 마음을 보냈었으나, 곧 그것이 오지랖 넓은 편견임을 알게 되었다.

이네들이 짐을 지고 나르는 것은 엄연히 생활의 일부이고, 소중한 밥벌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회사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르리며 밥벌이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깊은 산속인데도, 목가적인 풍경이 길을 따라 펼쳐져 있다.


나그네 걸음으로 찾아오는 내게는 저 봉우리가 신비롭고 멋드러져 보이지만,
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나고 죽을때까지, 한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봉우리...
그것이 높고 험할지라도 동네 뒷산처럼 친근하게 느껴질까? 아니면, 우리처럼 경외로울까?


산등성이를 따라서 길이 이어지고,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자연에 거스르지 않으면서, 척박한 땅을 일구어 발을 붙이고 사는 이네들이 위대해 보인다.


수돗가에도 경전을 새겨 놓았다. 이네들에게 종교는 삶의 한부분이다.


한 소년이 말 한 무리를 이끌고 루크라로 향한다. 아마도 남체까지 짐을 실어다주고 돌아가거나, 또 다른 짐을 실으러 가는 길이리라.
이 곳에서 말과 야크는 삶의 동반자이다.


저 뒤로 꽁데 피크(Kongde Peak, 6187m)가 보이고, 듁 코시(Dudh Kosi)를 따라 형성된 계곡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기대만빵하시라~ 이제부터 본격적인 에베레스트 트레킹이 시작된다 안카나! ^^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